IB Church

큐티/공지

어떤 날은 매우 친밀하지만 또 어떤 날은 날을 세웁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같이 살아가는 가족이라고 할지라도 매우 같은 패턴이 반복됩니다. 인간관계의 한계입니다. 

 

이러한 한계가 몸에 배어 있고 이러한 관계가 우리의 전부이다 보니 하나님과의 관계 또한 그렇게 생각합니다. 온전한 신뢰관계를 갖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은 가정이 그리 많지 않다보니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별이 없는데 왜 굳이 아버지라고 불러야 하냐며 하나님을 어머니라고 부르는 희한한 일도 생깁니다. 

 

내 삶의 관계로 하나님과의 관계로 정의하다보니 생기는 오류와 왜곡이 굉장히 많아집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과의 관계에 조건을 달고 하는 기도가 거래가 되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며 이 또한 신실한 관계로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늘 도움을 받는 관계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도움만을 구합니다. 늘 도움을 주며 살던 사람은 하나님을 좋은 분으로만 인식할 뿐 도움을 구하지 못합니다. 피해를 주지도 않고 피해를 받지도 않으며 사는 개인주의적 성향으로 살아가던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도 이성적으로 해석하고 맺습니다. 상처받던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도 움츠려들어 제대로 기도조차 못합니다.

 

어떠한 것도 나의 것으로 해석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이웃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은 할 수 없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는 일은 그림 속의 떡과 같은 일이 되어 버립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하지 못하고 사랑의 모양은 있으나 사랑할 수 없는 상태가 굳어져 사랑의 관계가 종교적 관계로 전락해버리는 것입니다. 

 

관계에서 상처받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상처가 하나님과의 소통의 통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친밀한 관계를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모델이 되는 것이 바로 ‘다윗’입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괴로울 때나 감사할 때나 다윗은 늘 하나님을 향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제대로 된 관계를 배우며 살지 못했고 부모로부터 사랑받는 삶도 살지 못했지만 늘 하나님을 바라며 때로는 소곤거리고 때로는 소리치며 하나님과 교제했습니다. 

 

구약시대에 지금의 시대와 같이 예배했던 사람 다윗과 같이 오늘도 나 스스로가 관계에 한계를 두는 것이 아닌 뛰어넘는 놀라운 친밀한 관계를 맺고 상황에 관계없이 기도함으로 나아가는 오늘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마시고 떠나지 마소서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시고 내 원수를 생각하셔서 평탄한 길로 나를 인도하소서,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시편 27:9-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