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넛지(nudge)’라는 경제용어가 있습니다. 원래는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주위를 환기시키다’라는 뜻이지만 적용범위가 넓어진 용어입니다. 사람이 어떤 결정을 내리게 하는 것에 영향을 끼치는 선택설계자가 있음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영양사가 똑같은 음식을 진열과 배열만을 바꿔놓음으로 소비량을 증가하거나 감소시킬 수 있는 것, 소변기에 파리모양의 스티커를 붙여 밖으로 튀는 소변을 80%나 줄인 것이 ‘넛지’의 대표사례입니다. ‘넛지’의 정의를 재정의 한다면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부드러운 개입으로 똑똑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돕는 것을 말합니다. 강압. 명령. 겁박이 아닌 선택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일입니다.
‘넛지’라는 단어를 접하면서 참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같은 상황 가운데서도 사람의 성품과 성격, 환경과 경험, 이해의 깊이, 상태에 따라 온유와 사랑으로 우리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넛지. 우리는 넛지를 길이와 너비, 높이와 깊이를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넛지는 긍정적으로만 사용되지 않습니다. 유료지만 무료처럼 보이게 해서 구입하게 만드는 것과 같이 부정적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일하시는 온유함의 방법, 하나님의 넛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내 뜻이 앞서 있을 때, 내 욕심으로 인해 마음이 조급하고 눈에 다른 것이 들어오지 않는 때, 상처로 눈이 가려진 때에는 결국 넛지의 상황에 감사하기는커녕 합리화시켜 내 멋대로 상황을 끌고 가게 되는 부정적인 상황이 연출될 때도 많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이러한 상황조차도 넛지로 자연스럽게 연출하십니다. 이 일을 통해 자신의 욕심과 죄를 들여다보게 하시고 다시 하나님을 향할 수 있게 하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세상에서는 넛지를 목표를 이루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지만 하나님의 넛지는 끝없는 사랑에 기인합니다. 색과 결이 다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넛지를 이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거래하듯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결국 스스로가 스스로를 속이며 위대한 사랑의 가치를 평가절하 해버리는 안타까운 인생을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진심으로 나아가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진심의 사랑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내 멋대로 나아가는 사람을 만나줄 이유가 없으신 분입니다. 다만, 간절함 마음, 갈급한 마음으로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것처럼 향할 때 우리 마음의 중심까지도 바꾸어주시는 사랑의 하나님, 참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낙심과 절망은 하나님의 단어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절대절망에서 절대소망으로 넛지 해주시는 분입니다. 교만을 겸손으로 바꾸시고 거래를 사랑으로 바꿔주시는 분임을 기억하며 마음을 다해 주님 앞에 나아가는 오늘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편 42: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