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한 두 번은 허리통증으로 고생합니다. 군대에 있을 때 다쳤던 허리통증이 재발해서 그렇습니다. 특히 비가 오는 장마철에 힘이 듭니다. 그런데 올해는 좀 빨리 찾아왔습니다. 봄을 알리는 비가 반갑기도 전에 몸이 먼저 비가 온다고 알려줍니다.
허리가 아플 때 통증이 제법 있습니다. 허리, 고관절이 아프기 시작하면서 다리, 어깨까지 통증이 번져갑니다. 저리고 답답하고 스트레칭을 아무리 해도 풀리지 않습니다. 그때뿐입니다. 비가 올 때, 저기압이 되는 날씨가 될 때는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영향 받지 않으려고 해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연례행사처럼 마음은 담담할 수 있지만 그 증상은 계속 힘들게 합니다.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받습니다. 아무리 정신을 차려보려고 해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영향을 받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어려운 일입니다. 환경을 내가 주도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홀로 살 수 없는 존재이기에 계산되어질 수 없습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몫은 생각보다 굉장히 적습니다. 작은 것들은 제법 되지만 굵직한 삶의 선택, 환경의 선택은 내 몫이 아닙니다. 자녀가 부모를 선택할 수 없습니다. 내 성별을 선택할 수 없고 시대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선택이지만 내가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할 수 없습니다. 내가 몇 년도에 태어났고 그 때 사회가 어떤 모습이었으며 내 부모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는지는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해진 그대로 내 삶의 환경이 됩니다.
아무리 삶은 주도적으로 살아가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변할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이미 정해놓아진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사람들은 ‘운명’, ‘숙명’이라고 말합니다. 이 모든 것을 계획하신 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세상을 만드신 분은 인정하려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생각했고 누군가는 만들었고 누군가는 죽어갔고 누군가는 살 수 있게 만든 세상 모든 것을 디자인하신 분이 있다는 것을 알려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자유라고 착각하고 진짜 자유를 속박이라고 생각합니다.
워낙 각박한 세상,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늘 만만치 않고 호락호락하지 않았으며 온통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것들로 도배되어 있는 삶을 살아왔기에, 매일을 힘껏 살아내도 떠내려가 버리고 기껏해야 제자리에 멈춰져 있는 인생을 살아왔기에 어떤 것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환경 가운데 너무나도 큰 절망과 고통, 상처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세상을 만드신 분을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대적하는 일까지도 생겨나게 됩니다. 안타까움의 연속입니다.
선하게 살아도 질병에 걸릴 수 있고 열심히 살아도 어렵게 살 수도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환경의 선택은 내가 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환경 가운데서의 내 마음의 선택입니다. 운명과 숙명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이것을 디자인하신 하나님을 인정할 것인지의 선택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삶은 이 세상이 끝이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죽음이 존재합니다. 그러기에 지금의 환경으로 모든 것을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환경으로 받은 상처와 아픔, 증상이 내 전부가 되게 해서도 안 됩니다. 디자인하신 분을 신뢰하며 주신 사랑을 경험함으로 오늘을 살아내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