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거의 대부분의 것이 처음 경험해보는 것들뿐이었습니다. 처음 경험해보는 것이라는 의미는 결과만이 아닌 선택과 결정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입니다. 전에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리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른, 아이, 전문가에 관계없이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에 대한 결과가 어떤 리스크로 다가올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부실해져 살얼음 위를 걷고 있는 듯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우리에게는 이마져도 너무나도 커다란 짐입니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갖가지의 모습을 뉴스로 접하면서 나 또한 그럴 수 있다는 마음이 우리의 소망을 빼앗아갑니다. 그렇게라도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우리의 모든 믿음을 순식간에 무너뜨립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살아온 삶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리 다를 것은 없습니다. 위기의 크기만 달랐을 뿐 우리 본질의 위기는 계속되었고 소망도 믿음도 상해가고 있었으며 모든 것이 늘 새로운 도전의 연속이었습니다. 리스크는 늘 있었고 얼음 위를 걷고 있었으며 부실함은 계속 되었습니다. 단지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 모든 것을 들춰놓은 것뿐입니다. 가리고 감추고 회피하며 괜찮다며 대충 덮고 살아오고 있었던 삶을 준비도 없이 들춰버린 것입니다.
당황함이 황망함이 되었을 뿐 늘 우리 곁에 있었던 일입니다. 초유의 사태를 경험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바닥부터 다시 훑어보아야 합니다. 어떤 것이 내 삶의 본질이었고 가치이며 이유였는지를 샅샅이 살펴야 합니다.
어떤 전문가의 목소리가 망치가 되어 뇌리를 쳤습니다. “어떤 누군가는 오늘, 2025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늘 준비하며 예측하고 실력을 키우며 살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세상을 이끌어갑니다.” 반성됩니다. ‘먹고 살아가는 것으로도 이토록 열정적으로 지혜롭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데 영혼을 사랑하고 살려야 하는 사람이 오늘에 매여서 되겠는가? 일주일을 허덕이며 살아가서 되겠는가? 교회의 존재 여부에 머물러서 되겠는가? 리더의 자격이 있는가?’
그래서 얼마 전부터 시작한 기도가 있습니다. 앞으로의 교회 모습, 성도들의 모습을 그려보며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 것처럼 마지막 시즌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람도 없고 재원도 없지만 기도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공동체로서 함께 생존할 수 있는 밑그림을 기도의 자리에서 그리고 있습니다. 늘 전염병과 강력한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우리 삶의 변곡점이 있었습니다. 어려운 시대이기는 하지만 더 크게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변곡점일 뿐입니다. 변곡점은 결국 알곡과 가라지를 가리고 생존할 수 있는 것만 살아남아 새로운 시대를 건설해나가는 계기가 됩니다.
모든 것이 무너져도 소망을 품어야 하는 이유이며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기대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이유입니다. 불안과 두려움, 상황과 환경 가운데 절망하는 것을 내버려두어서는 안 됩니다. 그 어느 때보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도리어 찬송하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는 오늘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시편 4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