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많은 분들이 연탄나눔에 동참해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통로가 되었을 뿐이고 그 귀한 마음은 하나님이 받으신 줄 믿습니다.
어떤 분은 이런 말을 합니다. “아직 개척교회이고 목사님 교회도 작은데 다른 곳을 돕는다는 건 좀 빠르지 않나요?”, “목사님 교회도 아직 미자립이라고 들었는데 목회에 전념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사실 이런 말을 한두 번 들은 게 아니라서 그리 큰 동요는 없습니다. 틀린 말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목회에 대한 개념, 교회에 대한 본질을 생각해본다면 다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교회는 건물을 세우고 많은 사람을 양육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부분일 뿐입니다. 초대교회는 건물도 없었고 많은 사람도 없었는데 그렇다면 그들을 교회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교회는 복음을 전하는 곳이고 하나님을 예배하며 이웃 섬김으로 생명을 전하고 살리는데 있습니다. 목회는 그 사랑을 받은 자가 삶으로 사랑으로 나누는 것을 살아내는 것에 있습니다.
하지만 수단과 방법은 하나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죄덩어리인 우리를 용납하시고 하나뿐인 아들을 보내주셔서 그 죄를 사해주심은 ‘사랑’외에는 어떤 것에서도 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자녀삼아 주심으로 죄를 씻게 하시고 사랑해주신 것입니다. 예전에도 죄인이었고 지금도 죄인인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지금도 붙드시고 살게 하시는 그 사랑으로 내가 오늘을 살아가기에 그 사랑을 나누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내 형편과 사정이 아닌 내가 받은 사랑을 살펴본다면 늘 나눌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돈을 벌면 교회에 헌금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헌금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 내 마음이 하나님께 있는지, 지금 내가 작지만 있는 것으로 하나님을 향할 수 있는지의 선택과 결단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여력은 없습니다. 개척한 지 6년 차가 되었지만 아직도 미자립 개척교회입니다. 하지만 매년 많은 이웃을 돕고 섬기고 있습니다. 인도에 있는 한 아이도 품고 있고 겨울이 되면 따스함을 나누는 일 등 때마다 섬김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개척하고서는 정말 아무 것도 없었기에 폐지를 수집했습니다. 길거리에 있는 걸 주우면 많은 분들의 생계를 빼앗는 것이 되었기에 아는 분들을 통해 집에 직접 가서 책과 폐지를 받아서 팔았습니다. 여름에 땀을 비오듯 흘리는 저를 보며 어린 딸이 그랬습니다. “아빠, 우리 교회도 작은데 다른 사람을 위해 왜 그렇게 힘들게 일해요?”
많은 생각이 교차하고 내 처지를 보니 한숨부터 나왔습니다. 하지만 하는 일이 티가 나지 않아도 계속하는 이유는 보이기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임으로 진심으로 그 사랑을 나누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사랑받은 자의 특권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향해 진심일 때 하나님도 나를 향해 진심으로 대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내가 받은 사랑을 이웃을 위해 나누고 흘려보내는 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과 같이 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형편과 사정이 있음으로 사랑을 나누는 것이 아닌 내가 받은 사랑으로 나누는 것이며 혼자 하는 것이 아닌 수많은 축복의 통로를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신다는 것을 믿으며 따스함을 나누는 오늘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태복음 25: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