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는 녹색어머니회 봉사를 하고 왔습니다.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자녀들이 안전하게 건널 수 있도록 안전 깃발을 올렸나 내렸다를 반복했습니다. 한두 번 해보는 건 아니지만 오늘은 좀 특별했습니다. 지나가는 자녀들을 안전하게 돕는 것 외에 늘 찬송하고 기도하는 것에 더해서 지나가는 자녀들을 축복했습니다. 한 명 한 명이 얼마나 예쁘고 귀한지 말로 형용할 수 없었습니다. 머리를 예쁘게 묶고 온 아이 머리에 달린 리본은 자녀를 향한 엄마의 마음을 알 수 있게 했습니다.
차로 태워다주고 교문 앞까지 데려다주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가 번갈아가며 자녀들을 등교시키는 모습. 자상한 모습, 무뚝뚝한 모습, 더 빠른 걸음을 종용하는 모습 등 다 그냥 좋아보였습니다. 유난히도 구름 없는 파란 하늘을 보며 고백했습니다. ‘자녀들을 자녀답게 키울 수 있는 부모가 되게 해주세요.’ 내 자녀만을 위하는 것이 아닌 함께 살아갈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고 내 자녀만 입히고 먹이는 것이 아닌 함께 키울 수 있는 부모다움이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모두가 특별한 존재이지만 아이들, 자녀들은 더욱 특별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충분히 사랑을 받아야 하고 마음껏 꿈꾸며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부모의 형편과 감정만을 받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서도 꿈꾸며 행복의 소망을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성도들에게도 늘 권면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나이가 없습니다. 그저 어린 자녀들일 뿐입니다. 나이가 70, 80이 넘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사랑스러운 자녀입니다. 너무 슬프고 간절하게 기도만 하지 마시고 아양도 떨고 애교도 좀 부리며 기도하세요. 하나님 앞에서 어른인 양 점잖아 보이는 것도 참 웃기는 일이에요.” 머리를 예쁘고 묶고 오지 않아도 그냥 청바지를 입고 단정하지 않은 머리를 하고 등교하는 아이들도 왠지 예뻤습니다. 잠이 덜 깨서 발걸음이 무거운 아이도, 할머니한테 심통 부리는 아이도, 차가 올까 무서워 차를 주시하며 조심조심 걷는 아이도 그냥 예뻤습니다.
그 모양대로, 그 모습 그대로 너무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가 묻어 있던, 죄가 충만하던, 늘 같은 죄를 지어 허탈하던 관계없이 그 마음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오라고 하십니다. 삶의 모습에 관계없이 무조건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오라고 하십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냥 그대로의 모습이 너무나도 찬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만나기 위해서 사랑하는 자를 사랑해주시기 위해서 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감당해주셨습니다. 믿고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오면 되는 일입니다. 연약함 그대로, 내 모습 이대로 나아와 그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을 나누면 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답게, 자녀답게 살아가면 됩니다. 내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생각이 전부가 됨으로 사랑을 경험하고 나누며 충분함으로 살아가는 오늘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내가 내 성막을 너희 중에 세우리니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하지 아니할 것이며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라 나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어 그들에게 종된 것을 면하게 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내가 너희의 멍에의 빗장을 부수고
너희를 바로 서서 걷게 하였느니라” (레위기 26: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