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각자가 특별한 만큼, 모두에게 주어진 은사와 달란트가 다른 만큼 기쁨의 모습도 사역의 드러남도 훈련의 강도도 모두 다릅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몫에 성실하고 정직하게 인생길을 걸으면 될텐데 늘 보이는 것은 충직한 내 모습이 아닌 나와는 다른, 좀 더 멋져 보이는 주변이며 지쳐있는 나의 모습입니다. 목사인 저도 목회를 잘하는 분들을 볼 때 부러움을 느낄 때가 있고 때로는 시기하는 마음이 올라올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잠시입니다. 다시 부르심의 소망, 그 방향을 따라 시선과 마음을 가져옵니다.
훈련의 강도와 모습이 다른 사람에 비해 나에게 너무 집중된다고 생각될 때도 지칩니다. 왜 나는 그렇게 돈에 대한 훈련을 계속 받는 걸까? 왜 나는 관계에 대한 훈련을 질리도록 받고 있을까? 왜 나는 기도에 대한 훈련을 끊임없이 요구받고 있는 걸까? 잠시 생각해보면 너무나 감사한 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사람마다 쓰임새가 다르고 부족한 영역이 다른데 어떻게 모두 같은 훈련을 같은 강도로 받을 수 있을까요? 내 생각이 상식적이 않다는 것은 금세 발견하게 됩니다.
인식함과 함께 내가 뭐라고 하나님은 그토록 관심을 두고 부족한 영역을 찾아 훈련장과 조교들을 선별해 나를 이곳에 두셨는지 감사가 넘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시선을 두고 예수님의 마음에 집중하면 성령님이 내 삶을 이끄시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영역에서, 어떤 훈련장에서 훈련을 받고 있어도 때가 되면 모으셔서 조합을 만드십니다. ‘지체’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채우며 각자의 영역에서 꽃을 피우게 만드십니다. ‘교회’입니다.
너무나 상식적인 말이지만 늘상 내 삶의 자리로 돌아갔을 때, 지칠 때 늘 왜곡된 내 생각에 잠겨버립니다. 그 때마다 떠올려야 할 것은 내 시선과 마음, 방향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일입니다. 잘 알지 못할 때, 나만 고생한다고 여겨질 때, 깊은 외로움에 잠길 때, 낙심으로 지쳐있을 때마다 해야 할 일은 신뢰하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신 영역 안에서 필요한 분량을 채워 각자의 주어진 역할 안에서 사랑을 나누는 삶을 살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비교를 멈추고 내가 어떤 영역의 훈련을 받고 있는지, 어떤 필요를 채워주고 계신지를 찾아 신뢰함으로 시선, 마음, 방향을 하나님께로 향하는 오늘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로마서 1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