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어떤 사건과 모습을 바라볼 때 옳지 않은 생각임에도 내가 늘 해왔던 생각으로 판단하고 평가하는 편견은 고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왜곡되고 훼손되어진지도 모른 체 나만의 옳은 것으로 굳어져 버렸습니다.
구정물을 맑게 하기 위해서는 수십 배의 깨끗한 물이 필요합니다. 굳어진 편견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 생각의 구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지금껏 살아왔던 내 생각의 구조를 버리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생각의 구조는 신기합니다. 왜곡되어 있음에도, 그 왜곡을 나중에 인지한 후에도 늘 다시 이전에 했던 생각으로 나도 모르게 작동되기 때문입니다. 늘 내가 해왔던 생각이기에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이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준이 필요합니다. 관점과 가치가 변해야 합니다. 보는 것과 듣는 것을 관리해야 합니다. 원래의 패턴대로 돌아가지 않도록 순간 벌어지고 있는 생각을 멈춰내야만 합니다.
‘이건 무서운 거야. 이건 두려운 일이야. 이건 피해야 해. 이건 아픈 거야. 이건 외로운 거야. 이건 극복해야만 하는 일이야.’ 이런 생각이 내 안에 굳어져 버리면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이 생각의 패턴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어렸을 때의 경험이 굴레가 되고 굳어져버려 지금의 지성과 상식의 수준은 큰 영향력이 없습니다.
이야기 하다보면 놀라운 현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무리 지적이고 수준이 있는 삶을 살고 있어도 어렸을 때의 경험을 전부로 여기며 벗어나지 못합니다. 인식하고 있어도 어쩔 수 없다고 여기며 도전조차 하지 못하는 무기력함을 갖고 있습니다.
새로운 기준, 관점에 대한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원래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변화하는 것도 힘들고 귀찮아 체념하며 살아갑니다. 이런 왜곡된 생각과 모습이 내 삶을 좀먹고 있고 내 자녀에게도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모릅니다. 지금 당장 자녀에게 그런 모습이 없다고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나도 모르게 자녀에게 심겨진 것이 반드시 있습니다. 자녀 앞에서는 아닌 척하면서 그렇게 살지 않게 하기 위해 힘을 써도 소용없습니다. 내 안에 버젓이 굳은 편견과 왜곡된 생각이 자리 잡고 있는 이상 절대적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찬양과 예배를 드려도 전심으로 드리지 못합니다. 내가 지금껏 해왔던 마음의 틀을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해도 소망을 품고 기대하며 기도하지 못합니다. 늘 그런 일방적인 기도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겨우 기도의 자리를 잡고 앉지만 고백이 안 됩니다. 마음을 꺼내본 경험도 없고 그 자체가 힘겹고 두렵기 때문입니다.
왜곡된 생각과 굳어진 편견을 인식하고 고쳐보려고 해도 쉽지 않습니다. 마치 사고를 경험하고 다친 몸을 겨우 끌며 재활하는 일처럼 고되어 포기하고 있던 소망까지도 절망으로 변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그럼에도 맑은 물로 깨끗해져야 합니다. 이전에 품던 마음이 새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굳어진 마음이 제하여지고 부드러운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가 나의 그리스도가 될 때, 성령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될 때 가능합니다.
수고와 노력이 아닌 은혜로, 생각의 몸부림이 아닌 진리의 말씀으로, 내 의지가 아닌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가능해짐을 믿고 변화를 소망하는 오늘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에스겔 36:2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