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를 하면서 늘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성도들이 치열하게 일주일을 살아내고 허덕이며 교회에 왔음에도 교회가 성도들을 더 지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안식과 회복, 비움과 채움, 사랑과 은혜를 맛보고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더 분주하고 힘겨워하는 것을 늘 봐왔기 때문입니다. 삶의 예배에서 지치고 깨지고 때로는 상처받고 아파서 교회에 오면 다시 회복시켜 세상으로 파송해야 하는데 교회 관계 안에서 다치고 아프고 분주한 일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커지고 해야 할 일이 많아지다 보면 그럴 수 있습니다. 헌신이라는 것도 결국에는 드릴 수 있는 만큼의 수준을 넘는 것이 되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선교적 차원과는 조금 결이 다릅니다. 내게 생명이 가득 채워져 넘치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사실 잘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각종 프로그램을 돌리고 좀 더 활발하게 움직이려고 행사를 만들고 하지만 때로는 이런 노력 때문에 더 지치고 고갈되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전제되어야 할 것은 예배의 회복입니다. 예배에서 위로받고 은혜 받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뜻과 성품, 생명을 다시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며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봉사가 아닌 예배에서 헌신하게 될 때 회복과 채워짐,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제가 섬기는 교회도 작은 교회이기에 가능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본질을 추구하며 최대한 슬림하게 예배중심으로 가야만 모두가 세워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봉사는 자발적으로 합니다. 하지 않는 비워진 부분이 제가 섬깁니다. 헌금도 자발적으로 합니다. 부족한 부분은 하나님이 채우십니다. 세례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만난 후 스스로 선택합니다.
영혼의 목마름이 채워지지 않는다면, 예배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일 하기에 분주하다면 어떤 프로그램도 돌리지 않는 것이 맞습니다. 교회가 커지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성도가 늘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외형상은 부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각자의 영혼은 거듭나지 못하고 채워질 수 없는 공허한 종교생활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죽어야 성령님이 주관하실 수 있습니다. 내가 낮아져야 높이실 수 있습니다. 내려놓아야 잡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늘 하는 성도들에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열심히 살아서는 안 된다. 지혜롭게 살아야 하고 잘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교회도 세상도 같습니다.
성막, 성전, 교회를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멋지고 아름답게 꾸미고 많은 사람이 분주하게 오가는 것을 원하셨을까요? 절대 아닙니다. 회개함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만남으로 회복을 경험하며 회복됨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경험하라는 것입니다. 충분하고 만족하며 넘치는 그 사랑, 그 생명을 세상을 향해 흘려보내라는 것입니다.
채워지고 넘쳐야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 내 안에 있는 것을 쏟아버리면 나 또한 살 수 없습니다. 본질이 무엇인지를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기도의 자리, 예배의 자리를 붙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인격적 만남을 경험하고 넘침의 예배를 사모하는 오늘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요한복음 7:37-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