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 Church

큐티/공지

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우리교회 성도 뿐 아니라 잘 알지 못하는 분들과의 만남도 많은 편입니다. 하소연 할 곳 없는 분들에게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특별히 하는 일이 있습니다.

 

만날 때마다 말, 생각과 삶에서 왜곡된 부분, 훼손된 부분,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를 알려줍니다. 경험과 영적인 영역뿐 아니라 수많은 과정을 살아내며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알게 된 것은 아니지만 모든 삶의 영역에서 본질이 아닌 것을 제하며 본질만을 품고 살아온 세월동안 저에게 축적된 분별력입니다.

 

가르쳐주고 알려주면 몇 가지의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말할 때는 놀라면서 이해하고 고쳐야겠다고 생각하지만 그 때뿐입니다. 다시 자신의 환경으로 돌아갑니다. 또 다른 케이스는 고맙다고는 하지만 아예 인식하지 못하거나 이해하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제자리입니다. 화를 내며 항변하는 분들도 종종 있습니다.

 

알려주고 가르쳐줘도 늘 제자리를 걷고 있는 분들이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나를 신뢰하지도 않으면서 만나는 이유는 뭘까? 위로 받고 말하는 것이 만남의 이유일까? 변하고 싶지만 혼자는 어려워서 도움을 구하고 있는 걸까자신의 생각이 최선이고 지금껏 살아온 판단이 늘 맞다고 여김으로 옳은 말씀을 드려도 인지하지 못합니다. 생각해보지 않았던 영역일 뿐 아니라 내 생각과 삶의 모든 기준이 본질과는 먼 모습으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맞는다고 해도 다시 돌이키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껏 살아온 것이 아깝고 변화되는 것이 두려워 외면해버리기도 합니다. 본질이 아닌 것은 버려야하고 자신이 위로받고 있던 대상을 내려놓아야 하며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 앞에 나오는 수고를 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억울함만 가득합니다.

 

실제로 씨 뿌리는 비유의 말씀처럼 씨가 길가에 뿌려져 새들이 와서 먹어버리고 얕은 돌밭에 뿌려져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가시 떨기 위에 뿌려져 기운이 다해 자라지 못하는 것과 동일한 상황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변화해야만 주변이 변할 수 있음에도 자신의 완악하고 견고한 성은 그대로 둔 채 다른 것만 바꿔보려는 수고는 더 큰 상처와 아픔을 가져옵니다. 이를 경험하고서야 깨닫게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돌이키기 위해 더 많은 수고와 어려움을 경험해야 한다는 것을 간과합니다안타까운 것은 시간도 상황도 함께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돌이킬 수 있는 시간, 변화할 수 있는 최적의 타이밍은 주저하는 순간, 두려워하는 순간에도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눈과 귀를 활짝 열고 예수님 손 꼭 붙들고 용기 있게 걸어내는 인생, 모든 것을 다 무너뜨리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 가운데서도 옳은 길을 선택하는 믿음, 마음이 좋은 땅되어 열매 맺는 삶을 향하는 오늘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마태복음 13:1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