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개그우먼이 젊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어제 기사를 보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밤 기도회를 마치고도 눈물이 계속 흘러나서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늘 나오는 기사. “그럴 줄 몰랐다. 한 없이 밝은 사람이었다. 도대체 왜 그런 일을...” 사람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말들로 답답했습니다. 너무 많이 울었습니다. 팬은 아니었지만 내가 괜히 더 억울해서 울었습니다.
‘생명을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을까. 복음을 어떻게 전해야만 이런 일을 막을 수 있는 건가. 교회가 네 교회. 내 교회 하지 좀 말고 생명 좀 살려보면 안 될까. 곳곳마다 세워져 있는 교회가 생명만을 향한다면 좀 더 촘촘한 생명의 그물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나님이 세상 그 무엇보다 사랑하는 자녀라는 것만 알았어도 허망하게 가지는 않을 텐데... 비통하고 애통했습니다. 그리고 인생 선배로서. 목회자로서 미안한 마음이 품어졌습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코로나 확진자 문자를 보며 염려함이 찾아옵니다. 사망자들을 보면서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코로나보다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람이 훨씬 많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은 이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그 일을 겪어내는 가족들은 아픔을 품고 살아갑니다. 내가 주변을 조금만 돌아봐도 알 수 있고 볼 수 있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짐을 짊어주신 것처럼 우리도 그들의 짐을 나눠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교회의 존재 이유는 생명을 살리는 것에 있습니다. 온갖 세상의 것에 미혹되고 유혹되어 속고 살아가는 사람의 영혼을 살리고 세우는데 있습니다. 세워놓은 건물이 예배당 되게 하는 일 뿐 아니라 각자의 삶에서 교회되게 하는데 있습니다.
사람은 마음은 가장 더러운 곳입니다. 온갖 세상의 것들이 꿈틀거리고 가득 차 있습니다. 시기, 질투, 욕심 뿐 아니라 상처, 아픔, 미움, 분노, 우울한 감정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사랑을 바라보는 순간, 그 죽음이 나를 위한 죽음으로 믿어지는 순간 그 마음에서는 생명이 넘쳐 흘러나옵니다.
절망에서 소망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오도록 돕는 곳은 생명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교회뿐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소망입니다. 교회가 유일한 세상의 대안입니다. 먹고 살아가는 배, 그것을 채워가기 위한 삶이었다면 이제 나를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 배에서 생수의 강, 생명이 흘러넘치는 삶으로 변화되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교회입니다. 그것이 빼앗길 수 없는 늘 충분한 우리 삶의 기쁨이며 소망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생명의 그물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교회가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는 곳임을 세상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먹을 것만을 채우는 배가 아닌 생명이 흘러넘치는 배가 되면 좋겠습니다. 각자의 슬픔을 나눠 기쁨으로 다시 채워지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목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성도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요한복음 7:3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