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기쁜 소식을 전할 때마다 오해받는 일이 참 많습니다.
성경에 쓰여 있는 그대로 전해도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상황에 대해 분별해서 말을 해줘도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라고 합니다. 사랑을 전해도 왜 자신을 무시하고 감정을 건들이냐며 도리어 거꾸로 제게 묻곤 합니다. 이런 분들을 만날 때마다 과연 이들에게 하나님은 누구이며 말씀은 무엇이고 나는 누구인가를 깊이 생각해보게 만듭니다.
저라고 싫은 소리하는 것을 좋아 할리는 없습니다. 모든 사람과 잘 지내고 싶지 괜히 사서 고생해가며 싫어하는 사람을 만드는 것도 피하고 싶습니다. 강단에 서서 축복만 나누어주고 싶고 용기 줄 수 있는 말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그릇이 되어야 담을 수 있고, 죄를 회개해야 회복이 될 수 있으며, 적이 누군지 알아야 싸울 수 있고,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아야 복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갓난아기가 숟가락을 들고 휘저으며 자신의 코도 찌르고 눈도 찌르는 상황에서 포크를 달라고 할 때 줄 수 있는 부모는 없습니다. 젓가락을 내어줄 부모는 더더욱 없습니다. 포크도 필요하고 젓가락도 필요하지만 지금은 아닌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껏 자신이 살아온 개념, 신념이 전부라는 착각입니다. 그래서 늘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장까지 합니다. 성경말씀을 진리라고 믿으면서도 늘 자신의 생각이 가장 일순위에 있습니다. 아버지 된 하나님의 입장에서 어떤 것도 줄 수 없는 이유이며 가르치는 이유임과 동시에 책망하고 훈계하는 이유입니다.
나이는 들어가고 머리도 희끗해지며 사회적 위치도 생겨갑니다. 가르쳐야 할 자녀도 생기다보니 속사람의 성숙됨도 없이, 조금의 자기반성도 없이, 하나님 말씀에 비춰봄도 없이 자신이 어른이 된 것으로 착각합니다. 나이든 사람은 많지만 어른이 없는 이유입니다. 자녀세대가 방황하는 가장 큰 원인입니다. 가정이 견고하지 못하고 흔들리며 깨지는 이유입니다.
자신이 어른이 아닌 ‘어른이’라는 고백과 함께 교회에 왔지만 성경말씀보다 자신의 생각이 위에 있고 그것을 가르쳐주는 종을 스승으로 여기는 것은커녕 자신 덕분에 살아가는 종 취급을 하고 선포하는 진리의 말씀까지 무시하는 행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것을 가르치는 주의 종은 그 사랑의 마음을 품고 나누며 전하는 사람입니다. 전함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품고 말씀의 진리가 내 개념과 신념을 덮을 때, 세상의 것이 아닌 영원한 것이 전부될 때, 온유함과 겸손함으로 기도의 자리에 설 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삶에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겉모습도 속사람도 모두 어른이에서 어른으로 옮겨오는 역사하심을 경험하는 오늘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비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데살로니가전서 2: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