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 Church

큐티/공지

베드로는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따르려고 합니다. 수제자다운 모습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지금 따라올 수 없고 후에는 따라올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은 것입니다.

 

베드로는 열정적으로 자신의 목숨까지도 드릴 수 있다고 고백하지만 도리어 예수님은 닭이 울기 전에 3번 부인할 것까지 말씀하십니다.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충격적인 말씀으로 인해 베드로에게 멘붕(멘탈붕괴)이 찾아왔을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사람들은 어떤 상황이든 내가 이해할 수 있다면, ‘그런 일이 발생된 것인 줄만 알 수 있다면 모든 것을 감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베드로처럼 목숨까지 받칠 수 있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도리어 그 이유를 아는 것이 더 큰 어려움을 가져옴을 알지 못합니다.

 

이유를 알게 될 때 우리 안에 찾아오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근심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문제와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하나님만을 믿고 따르는 것이 아닌 근심, 염려, 해결방법, 조건, 도울 사람을 찾는 것과 같은 생각이 앞서갑니다.

 

이유를 헤아리는 것이 아니라 방법을 찾는 것이 내가 늘 해왔던 삶의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이 앞서고 분석하는 것이 앞서고 상황을 판단하는 것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근심한 것입니다.

 

따라올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지금은 따를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것이고 이해할 때가 온다는 말씀이었습니다.

 

하지만 자꾸 알려고만 합니다.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 내가 모르는 게 무엇인지를 알려고 합니다. 따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알려고만 합니다. 알게 될 때 따르지도 못할 거라는 자신의 수준을 알지 못합니다. 마음이 아닌 머리로 믿는 것의 한계입니다.

 

물론 아는 만큼 믿을 수 있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믿는 만큼 알게 되는 것이 진짜입니다. 아는 만큼 믿는 것이 가짜는 아니지만 마음이 아닌 머리, 영성이 아닌 지성으로의 방향이기에 다시 전개되는 힘겨운 과정이 필요합니다.

 

모든 사람이 손가락질할 때 끝까지 함께 해주고 믿어줄 수 있는 것이 우정이며 가족이고 사랑인 것처럼 이해되지 않아도 따르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사랑을 경험하게 해주고 그 사랑은 내 마음 가운데 예수님의 마음을 가득 채워줌으로 더 큰 믿음으로 나를 이끌어줍니다.

 

예수님이 부활했을 때 도마는 도무지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손바닥에 나 있는 구멍과 옆구리에 뚫려 있는 창자국에 손을 넣어보라고 하십니다.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기를 원하시는 마음이었습니다.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믿고 신뢰함으로 따르기는 것이 믿음이지만 이성으로, 생각으로 하나님을 향하는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근심이 아닌 믿음으로 곧장 오기를 원하십니다.

 

지금껏 쌓아온 나만의 생각, 때마다 하나씩 붙여져 어울리지 않는 믿음의 조각, 마음이 아닌 머리로 해왔던 신앙생활에서의 근심을 내려놓고 믿음으로 나아오는 오늘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한복음 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