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그릇이 아직도 크지 않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는 한 주였습니다. 많이 커진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습니다.
허세를 부리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기도를 해도 크고 넓게 하는 것도 어려워합니다. 하나님이 마음 주시는 선까지만 발걸음을 옮겨놓습니다. 무언가를 크게 하는 것을 싫어하면 싫어했지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늘 누군가를 섬기고 세우는 일, 돕고 나누는 일이 훨씬 더 저를 기쁘게 합니다.
목회를 시작할 때 마음을 주신 것이 있습니다. 사역을 해나가면서 느낀 것을 붙들고 기도할 때마다 보여주신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이 너무나 큽니다. 그래서 늘 주신 마음은 내 때에 무언가를 이루는 것이 아닌 그 일의 모퉁이 돌만 되어도 큰 감사가 될 것이라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작아도 건강하게, 부족해도 믿음으로, 어려워도 감사하게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며칠 동안 에스겔 말씀을 묵상하며 회개하게 되었고 정말 그릇이 작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겪어야 할 모든 고난과 시련을 에스겔에게 직접 겪게 하신 하나님. 그 모든 시작은 에스겔을 부르셨고 입에 말씀을 넣어주셨으며 백성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 또한 주셨다는 것입니다. 목회 시작할 때 주신 마음과 사역 과정 가운데 보여주신 것이 에스겔의 사역 모습과 오버랩 되면서 내 그릇의 작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고 하나님의 다스리심 가운데 더 온전히 있어야 할 것을 깊이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민족의 죄를 붙들고 기도하며 그 죄를 짊어질 수 있는 긍휼의 그릇, 하나님이 요구하는 모든 것이 자신에게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지만 다스리심을 끝까지 따를 수 있는 순종의 그릇,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사랑을 붙들고 나아가는 기도의 그릇.
다른 사람들의 모습과 비교하지 않고 하나님의 시선 가운데 나를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이 정도면 됐지, 이 정도면 괜찮은 거지, 이 정도면 다른 사람보다는 더 잘하고 있는 건데 뭘’ 성도들에게 늘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던 모습을 에스겔을 통해 제 안에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 그릇이 너무 작습니다. 주신 것을 담을 수도 없습니다. 어쩌지요? 애초부터 제가 품기 너무 큰 것은 아니었습니까? 하지만 주님이 원하신다면 그릇을 넓혀주세요. 아프고 힘들고 고통스럽겠지만 그럼에도 쓰임 받을 수 있는 그릇의 크기로 만들어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말씀을 먹이시고 창자까지 채워주셨고 그것이 꿀보다 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반역하는 자들에게 나아갈 때에 단단하게 해주셔서 두려움까지도 제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심으로 세상의 것에 흔들리지 않게 하신 것입니다.
마음의 그릇이 너무 작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다 담아낼 수 있습니다. 그에 맞는 그릇으로 맞춰주실 것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능력이 너무나도 작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내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행해주실 것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패역한 족속, 하나님에게 등을 돌린 백성, 무지함과 우매함으로 자기 멋대로 예배하는 교회를 향해 하나님은 준비된 자를 통해 오늘도 사랑을 쏟아 부어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릇을 하나님을 향해 열어두는 일입니다. 일하실 수 있도록 기도로 그 장을 열어놓는 일입니다. 마음의 그릇을 하나님께 활짝 열어두는 오늘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 발로 일어서라 내가 네게 말하리라 하시며 그가 내게 말씀하실 때에 그 영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켜 내 발로 세우시기로
내가 그 말씀하시는 자의 소리를 들으니” (에스겔 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