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집에 난리가 났었습니다. 신혼 때 샀던 냉장고는 예전에 돌아가셨고 어떤 지인이 10년 넘게 쓰던 냉장고를 받아 6년을 썼는데 소리도 없이, 증상도 없이 운명을 달리 했습니다. 냉동실에 있는 음식과 아이스크림이 다 녹아 줄줄 흘러내려 수습을 해야 할 때는 이미 많이 늦은 시간이었습니다. 음식 하나라도 건지기 위해서 본가, 처가, 그리고 교회 냉장고에까지 뛰어다니며 날라야 했습니다.
마침 허리가 좀 좋지 않아서 쉬려고 했는데 일이 터진 거라서 땀범벅이 되며 나도 모르게 불평이 입 밖으로 터져 나왔습니다. “하나님, 이게 뭐에요! 너무 짜증나요. 아... 진짜” 냉장고를 청소하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계속 불평했습니다. 두 달 전 에어컨도 수리불가 하다는 서비스직원의 말에 감사하며 할부로 바꾼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자동차도 휴가비로 모아놨던 돈을 다 털어 넣으며 감사하며 할부로 고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또 다시 냉장고를 사야한다는 것에 마음이 흔들린 것입니다.
하나, 둘 쌓이다보니 하나님의 관점을 놓치고 중심이 나에게로 옮겨와 현실적 감각이 살아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자. 좋으신 하나님이 일부러 힘들게 하진 않으시겠지. 냉장고를 바꿔주시려고 하셨네~ 매번 반찬을 테트리스처럼 쌓아놓고 살아가는 우리가 안쓰러우셨나보다’ 관점은 나에게서 하나님께로 옮겨오니 불평이 감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습니다.
당장 필요한 냉장고를 아내와 함께 구입하러 몇 곳을 다녔습니다. 가장 빨리 배송될 수 있는 냉장고를 찾는 게 급선무였습니다. 처음 간 곳은 불친절. ‘사려면 사고 말라면 말라’는 식으로 대해서 감사가 짜증으로 흔들렸습니다. 다음 찾은 곳은 바로 배송될 수 있는 냉장고를 보여줬습니다. 기쁨은 잠깐이었습니다. 우리의 급한 사정을 알고 엄청 비싼 냉장고를 보여주며 40% 가까이 할인될 수 있는 내용을 읊어댔습니다. 잠시 흔들렸지만 우리 형편에는 너무 비쌌습니다. 12개월 할부조차도 너무 큰 부담이었기에 상한 마음을 붙들고 나와 다른 곳으로 향했습니다. 감사가 쪼그라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아내가 고백합니다. “냉장고가 고장 난 게 감사해요. 우리 가족 누군가가 아프거나 다친 게 아니니까요. 바꿀 시기도 한참 지났으니까 이번 기회에 바꿔 주시는 거지”
마음이 덜컹했습니다. ‘내가 한 감사는 감사가 아니었구나. 상황을 모면해보려고, 불평하지 않으려고 했던 감사였구나.’ 뜬금없는 고백한 아내의 말에 회피성 감사를 내려놓고 회개하며 깊은 감사의 마음으로 기도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갑자기 통신사에서 장기고객으로 당첨됐다며 평소 갖고 싶었던 비싼 무선이어폰을 선물로 보내줬습니다. 그리고 딸도 어려운 친구에게 편지를 쓴 것이 당첨되어 학용품세트도 상품을 받게 되었습니다. 웃으며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내 인생에 이런 당첨은 처음입니다. 그런데 주님, 이 정도로는 안 되는 거 아시죠^^?” 고백과 함께 평안함, 기쁨, 감사함이 가득해졌습니다. 그리고 세심하게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신뢰가 더 깊어졌습니다.
걱정과 염려, 근심과 불평은 순간, 찰나에 찾아옵니다. 한 두 번은 분별하며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지만 몇 번이 쌓이고 가장 힘든 타이밍에 찾아오게 될 때는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해야 할 것,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 시선의 중심인 사랑입니다. 각박하고 척박하고 견디고 버티기 힘든 인생을 살아갈 때는 냉장고의 사건보다 더 큰 일들이 우리를 위협하고 흔듭니다. 위로에 목을 매고 문제에 짓눌려 정신을 차리기 어려운 순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승리의 비결은 믿음에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초유의 사태를 경험하고 있지만 어두울수록 더 빛나게 해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오늘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마태복음 6:3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