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조선 선조 때 풍신수길이 일본을 통일하고 우리나라를 쳐들어와 한양을 비롯해 조선팔도를 유린했습니다. 일본은 철저한 전략과 책략, 군사와 군량으로 무장하고 들어왔고 선조는 도성과 백성을 버리고 북쪽 땅 끝으로 퇴각했습니다.
나라를 통일하고 그 힘을 외부로 힘껏 사용했던 일본. 하지만 조선은 그 어느 때보다 안일했습니다. 국가의 존재보다 권력(정권)을 지키기 위함이 앞섰던 위정자, 돈으로 신분을 사고 뇌물로 자리를 만들고 삶을 연명했던 양반과 백성, 신분제도로 인해 인물이 나올 수 없었던 구조. 유교적 마인드로 겉으로 보여지는 것만을 중시했던 조선이었습니다.
조선은 지금의 북한의 실상과 너무나도 흡사해 보이지만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황망하게 폭망했던 조선과 지금 우리나라와 무엇이 다른가요? 우리 교회와 무엇이 다른가요?
안일하게 교회의 외형만을 키워오며 경쟁하듯 교세만을 이어온 교회, 세상의 돈과 권력이 너무 좋아서 교회에서는 장로, 권사, 집사이면서 세상에 나가 돈으로 사람을 사고 뇌물로 연명하는 성도, 세상에 순응할 뿐 관심 없이 당연시하고 있는 교회. 국민들을 위함이 아닌 정권만을 위해 존재하는 정당과 정치인, 신분제도와 같이 기득권을 잡은 사람들이 노블리스 오블리제로 책무를 다하는 것이 아닌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 자신만을 위한 법을 만들고 있는 지금 우리나라, 개인의 자유로 스스로 책임지고 헌신하고 희생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정권과 사상의 칼날로 희생되어져야만 하는 나라.
주입식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스스로 사고하지 못하고 질문하지 못하며 주어진 것만 줄줄 외워댑니다. 한시적인 정권과 미숙한 정책이 주도함을 반복해도 이처럼 국민은 스스로 책임지고 섬길 수 있는 것이 아닌 기다리고 바라보기만 하는 우매한 백성이 되고 있습니다. 조선과 다를 바 없습니다.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조선과 지금의 대한민국, 그리고 한국교회는 비슷한 수준을 넘어 같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 그에 따른 삶의 이유와 목적, 사랑과 헌신으로 세상을 섬기는 본질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우매해도 우매한 줄 알지 못하고 낭떠러지인줄도 모르고 열심히 달려가게 될 것입니다. 순종과 복종을 구분하지 못하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며 모든 삶의 우선순위가 뒤죽박죽 되어 때마다 자신의 입장에 맞는 것만을 서로 주장하게 될 것입니다.
임진왜란으로 유린된 조선을 탈환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든 사람이 있습니다. 이순신입니다.
“필사즉생 필생즉사. 죽으려고 하는 자는 살 것이요, 살려고 하는 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지금을 살아가는 교회와 성도의 모습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대충해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선으로 악을 이길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유와 우리가 해야 할 책무를 지킬 수도 없습니다. 절체절명의 순간, 위기라는 인식과 함께 간절함, 갈급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나 스스로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잃으면 잃으리라. 죽으면 죽으리라. 망하면 망하리라. 다만 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살아가는 자가 되는 길을 선택하고 결단하리라. 이 땅이 전부가 아님을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우매함을 깨고, 섬김으로 자유를 굳건히 하며, 책임이라는 공동체정신으로 살아가지 못한다면 다음세대는 없을 것입니다. 간절함으로 결단하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오늘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마태복음 16:2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