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섬기는 교회는 아직 미자립 개척교회입니다. 그럼에도 섬교회와 같은 곳을 돕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몇 가지를 정리해보면 쉽게 알 수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첫째는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개척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럴 수 있는 수준, 깜냥이 되는 목회자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갈 수밖에 없도록 인도하심이 있었습니다.
누구나 그랬겠지만 저 또한 순종함으로 개척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원대한 꿈이 생겼습니다. 인본주의적 교회가 아닌 성경적 교회, 덩치가 큰 것이 아닌 큰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 물질이 많기보다 영적으로 풍성한 교회를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전통적인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성경적인 것에서 벗어난 것이 너무나도 많다고 느꼈기에 목회 후배에게, 다음 세대에게 모델이 될 수 있는, 본질로 돌아가 예배할 수 있는 교회를 꿈꿨습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열악했습니다. 여름에는 에어컨도 없어서 설교 중 땀이 흘러 눈썹을 뚫고 눈에 들어와 따가웠고 겨울에는 단창으로 된 창문으로 추위가 들이쳐 설교하는 중 발가락이 얼었습니다. 겨울에 선풍기 같이 생긴 온열기를 틀어놓고 설교를 준비하고 기도했습니다. 매번 어깨가 뭉쳐서 잠을 이루기도 어렵고 더 이상 기도하기도 힘들어졌습니다. 돈이 없어서 점심을 거르는 것도 일상이었습니다. 그 때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몇 분의 목사님과 사모님, 집사님이 오셔서 교회에 단열벽지를 붙어주셨고 단창을 섀시로 바꿔주셨습니다. 몇몇 작은 교회가 모금을 했고 한 목사님은 비용을 아껴 좋게 해주시려고 섀시 공장에까지 가서 직접 맞춰오는 수고까지 해주셨습니다. 그 사랑을 받았고 목회를 그만둬야 하는 위기 가운데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도록 인도하셨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랑을 베푸는 것에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이번에 도와드린 섬교회도 우리 교회를 도왔던 분들과 함께 한 은혜로운 시간이었습니다.
둘째는 6년 차임에도 아직 미자립 교회이기는 하지만 그 기준을 세상적인 것에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월세, 관리비, 사례비를 모두 지급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자립된 교회로 보지만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세워진 곳이며, 하나님 아버지의 집인 동시에 성령님의 임재하심과 기름부음을 받을 수 있는 곳이며 성도들의 영적 싸움을 지원하고 함께 싸워내는 삶의 베이스 캠프이기에 자립은 물질에 있지 않고 영적인 풍성함에 있습니다. 물질적으로 자립하는 것은 아직 한참 남았지만 영적으로 자립하는 것은 되어져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신뢰하며 진심으로 찾고 고백하며 기도하는 것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 영적인 자립에 힘입고 십시일반으로 모금된 것을 통해 섬교회를 도울 수 있었습니다. 내 통장에 있는 잔고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며 오늘의 수고로 월급을 받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물질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물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물질은 사용하는 것이지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은 쌓아놓는 것이 아니라 풀어놓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물질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물질로 영혼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다스림’입니다. 영혼이 잘 되는 것이 일순위입니다. 그래야 우리 삶에서도 나눔과 섬김을 행할 수 있습니다.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잎사귀가 마르지 않음처럼 건강할 수 있습니다.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한3서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