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죄인입니다. 죄로 인해 오염되어 있고 죄에 매여 있으며 그 죄를 스스로는 어찌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 죄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벗어낼 수 있습니다. 젖은 옷을 벗고 새 옷을 입어야 감기에 걸리지 않듯, 더러운 손을 물에 씻어내야 하듯, 매일 식사할 때 사용한 그릇을 때마다 설거지해야 하듯 죄는 늘 우리에게 있지만 벗어내고 씻어내야 합니다.
죄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스스로의 존재의 가벼움으로 인해 절망합니다. 죄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을 괴롭게 하거나 다른 사람 탓하며 살아가는 것을 멈출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정죄도 죄를 씻고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 안의 본성은 늘 죄를 향하게 하고 그 죄를 이겨낼 수 있는 그리스도를 멀리하기 때문입니다. 죄를 가볍게 여기고 때로는 죄를 스스로 무겁게 여겨 하나님을 향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죄를 들춰내는 것도, 그 죄를 덮어놓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없습니다. 죄는 하나님 앞에 드러내고 고백되어져야만 합니다. 죄를 해결하실 수 있는 분에게, 그것이 죄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 분에게 보여야 합니다.
폐암 환자가 치과 의사에게 진료를 받아도 소용없고 이가 썩었는데 우리나라 최고의 척추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아도 의미 없는 것입니다. 질병에 맞는 전문의에게 치료 받는 것을 진료 받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 용서하는 것은 의미 없습니다. 죽음으로 대가를 치루겠다는 것도 한참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 앞에 고백되어져야 합니다. 이것을 회개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죄는 늘 나를 힘들게 하고 작아지게 할 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친밀함까지도 빼앗아버립니다.
아빠라는 존재를 통해 하나님을 바라보는 아들에게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어서 늘 대화하고 놀아주고 마음을 나누며 키워왔습니다. 그래서 늘 아빠가 좋다는 고백을 듣습니다. 하지만 이놈이 요즘은 저를 슬슬 피합니다. 죄 때문입니다. 몰래 핸드폰 게임을 한 것이고 부재중일 때 컴퓨터 게임을 한 것입니다. 자신이 해야 할 것을 다하지 않고 게임을 했고 하지 말아야 할 시간이 게임을 했으며 약속을 어기고 게임을 했으니 이제는 아빠의 존재가 불편하기 시작합니다. 친밀한 존재가 아닌 피해야 할 부담스러운 존재가 된 것입니다.
늘 하나님과 친밀하게 대화로 기도하고 내 입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하는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더라도 죄가 들어오면 금세 하나님에게 면목 없고 죄송스러울 뿐 아니라 죄를 수용하기 위해 피해야 할 존재가 됩니다. 하나님과 행복하게 모든 것을 누리며 살아왔던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나서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숲에 숨어 있던 것도 이와 같은 모습인 것입니다. 죄를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죄로 인해 가장 중요한 친밀함이 깨질 수 있음도 알아야만 합니다. 죄는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것이며 나와 내 가족을 집어 삼킬 수 있음도 인지해야 합니다.
숨지 말고 나와 회개해야 합니다. 죄인이었을 때에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와주심을 기억해 돌이켜야 합니다. 회개하고 돌이키는 오늘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창세기 3:8-9)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