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온 환경 속에서 만들어진 내 생각과 모습을 전부라고 여기며 살게 됩니다. 남들이 나를 보는 그 시선을 덧붙여 나의 존재를 완성합니다. 이 둘 다 잘못된 판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모습 뿐 아니라 마음과 성품까지도 하나님을 닮게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의 생김새가 다르고 살아가는 방법, 모습, 태도, 습관이 다르듯 우리에게 주신 삶의 모습도 다르게 만드셨습니다. 서로 비교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섬기고 나누며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연합되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그렇게 하나님을 바라며 살도록 만드셨습니다. 모두를 특별하고 독창적인 존재로 만드신 것입니다.
하지만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 하나님이 나를 어떤 이유로 창조하셨는지, 나의 탁월함과 특별함은 무엇인지 관심 없이 오늘을 살아가기에 급급합니다. 그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사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살아갑니다.
이 또한 잘못된 판단입니다.
환경 속에서 만들어진 나,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보는 나를 더해 흔히 ‘객관적인 내 모습’을 보려고 하지만 결국 스스로의 모습을 잃게 만드는 우(愚)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객관적인 모습이란 없습니다. 하나님이 빚으신 내 모습만 있을 뿐입니다. 그 모습대로 살아가는 것, 주신 것을 섬기고 나누는데 사용하는 것이 바로 사명자로서의 인생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 성품, 탁월함, 특별함은 사용되어져야 합니다. 사용해야만 합니다.
주인이 종에게 돈을 맡기고 떠났습니다. 한 명에게는 5달란트, 또 한 명에게는 2달란트, 나머지 한 명에게는 한 달란트. 주인이 돌아왔을 때 잘 사용한 두 명은 칭찬을 받았지만 한 달란트를 받고 두려워 쓰지 못하고 땅에 파묻어 그대로 내어준 종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나에게 주신 달란트, 특별함, 탁월함은 사용되어져야 합니다. 사용해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삶의 이유와 목적은 무엇인지를 알아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특별함, 탁월함을 발견함으로 쓰임 받고 사용되어지며 나누고 섬길 수 있는 삶이 되는 오늘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마태복음 25:25-2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