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라는 아주 오래된 영화가 있습니다. 주인공 남자는 여자의 성격 나쁜 것은 참을 수 있어도, 못생기고 뚱뚱한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고 늘 생각하며 살던 사람입니다. 어느 날 우연히 최면요법을 받은 후 만난 여인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 여인이 의자에 엉덩이만 걸쳐도 의자가 박살나고 여자와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여인은 고도비만의 여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여자를 사랑하게 됐고 최면에서 벗어난 후에도 그 여인을 아름답게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스토리입니다.
고도비만의 여성이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그녀로, 제일 싫어했던 스타일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상형으로 바뀔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요? 보이는 것의 변화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늘 원하던 모습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만 바라보며 그것만을 향해 살아가면 그것 밖에 볼 수 없습니다. 듣는 것도 마찬가지고 주변의 사람도 동일하게 만들어집니다. 내가 만든 세상에서 나만 옳고 다른 사람은 다 틀린 것으로 보여 독불장군 고집불통으로 살아갑니다. 내가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내게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지금도 운영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이루셨고 지금도 그 약속을 이뤄가고 계신 그 뜻대로 움직여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한다면 늘 겉사람에만 머무를 뿐 속사람으로 살아낼 수 없습니다. 본능에 머물 뿐 본질적 인생은 맛볼 수도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주어주신 삶의 이유와 목적은 절대로 알 수 없습니다. 그냥 흘러 가는대로 내 눈에 보이는 대로, 상처로 인한 왜곡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반응하기 급급해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세상의 것을 보면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보고 있으면 깨끗한 창, 말씀의 창을 통해 세상의 것을 바로 볼 수 있게 됩니다. 주신 지혜로 분별하고 통찰함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먼저이고 나중인지를 확신 있게 살 수 있습니다.
아무리 설명해도 늘 보이는 것, 손에 잡히는 것만을 이야기합니다. 믿음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살아왔던 모습 그대로 자신의 틀에 맞춰져야만 옳다고 믿는 것입니다.
‘바라봄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믿고 바라고 기도한 것이 우리 삶의 실체가 된다는 영적 원리입니다. 가장 중요한 하나가 빠졌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뜻, 비전을 믿고 바라보고 기도할 때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영적인 것이 우리의 믿음과 삶을 통해 이 땅에서 보여지는 실체가 된다는 하나님이 주신 원리입니다. 더 쉽게 말하자면 하나님이 행하실 약속이 우리 믿음을 통해 이 땅에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껍데기, 겉모습, 보이는 것에 연연하는 인생이 아닌 그 속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고 반응하며 믿음으로 살아내는 오늘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히브리서 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