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잠이 오지 않아 기도하며 사도 바울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세상의 온갖 스펙을 다 갖추고 열심을 다해 살았고 인정받던 사람임에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만난 후 세상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음을 묵상했습니다.
세상의 것을 채우면 채울수록 마음속에는 허무함만 가득해집니다. 허망함과 외로움이 때마다 엄습해옵니다. 우리가 채우기를 원하는 그 공간은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실 때 함께 하실 수 있는 자리인 ‘절대공간’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 절대공간에 학벌, 권위, 권력, 명예를 가득 담고 세상을 향해 앞장서 힘껏 살았습니다. 예수를 만나고 단 번에 돌이킬 수 있었던 것은 늘 절대공간을 채우지 못하고 살았던 스스로의 모습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만나기 전에는 절대공간을 인식은 하지만 무엇을 채워야 할지, 무엇으로 허무함과 외로움, 삶의 헛헛함을 감당해야 할지를 알지 못하기에 이것저것 다 넣어봅니다. 보기에 좋은 것, 남들이 좋다고 여기는 것, 내게 없는 것을 찾아 수고하여 열심히 채워 넣습니다.
하지만 무엇에 굶어 있는지, 무엇을 소유해야만 가능한 일인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채우면 채울수록 불가능해보이고 만족할 수 없는 인생이 반복됨으로 음란과 쾌락과 권력의 끝이 어디인지 찾아 헤매는 인생이 됩니다.
인간은 하나님 없이 살 수 없게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생명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절대공간을 어떻게든 느끼고 채우며 살아가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어떤 것도 채울 수 없는 오직 하나님만이 임재하시는 공간, 하나님의 의만이 가득 채워질 수 있는 공간,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있는 절대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절대공간에 성령님과 함께 함을 경험한 바울의 인생은 완전히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잘못된 신앙을 가진 자를 찾아 판단하고 벌하던 인생에서 그들은 찾아 살리는 인생으로, 자신만을 위해 악착같이 살던 인생에서 주신 은혜를 나누는 인생으로 변했습니다.
균형을 맞춘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으면 군것질하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인스턴트로 대충 때우는 식사를 한 사람은 배부르게 먹었더라도 자꾸 헛헛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냉장고 문을 수시로 열고 닫고 주변에 있는 간식거리에 손이 갑니다. 속은 채워지지만 결국 몸은 비대해지고 건강은 좋지 않게 되며 다시 금세 배고픔과 목마름을 느끼는 삶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인생도 똑같습니다. 절대공간에 오직 하나님으로 채워지지 않는다면 온갖 세상의 것을 채우고도 금세 배고픈 인생, 온갖 성인병과 같은 문제를 불러오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허무함과 외로움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만남입니다. 성령님과의 만남입니다. 우리의 절대공간은 오직 성령님이 임하셔야만 채워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럴 때 배고프지 않고 목마르지 않은 인생, 세상의 것으로 채우기 위해 힘쓰는 허망한 인생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열심과 분주함을 멈추고 성령님과의 만남과 동행함을 사모하며 영육간에 건강한 오늘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빌립보서 3: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