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신학생들 간에 논쟁이 있었습니다. ‘고지론’과 ‘미답지론’의 논쟁입니다.
‘고지론’은 그리스도인들이 실력을 갈고 닦아 높은 지위에 올라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회사의 사원이 복음을 전하는 것과 사장이 복음을 전하는 것은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장이지만 보스가 아닌 리더의 모습으로 섬길 수 있다면, 고용인으로서 모습이 아닌 협력자, 동역자로서의 모습으로 겸손하게 섬길 수 있다면 그 영향력은 실로 엄청날 것입니다.
‘미답지론’은 세상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너무 궂은일이고 인정받지 못하는 일이기 그 누구도 하지 않는 일을 그리스도인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낮고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을 향하는 것이 진실된 섬김이라는 것입니다. 필요하지만 그 누구도 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고 월급을 많이 주는 것도 아니면서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받더라도 어둠 가운데 반드시 빛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말이 맞는 걸까요? 둘 다 맞습니다. 다만 부르심과 사명에 따라 위치만 바뀔 뿐입니다. 의미 없는 논쟁입니다.
얼마 전에는 십일조를 내야 하는지, 내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 큰 논쟁이 있었습니다. 구약에서 말하는 십일조의 개념은 신약 시대에 와서 연보라는 개념을 그 범위가 확대되었습니다. 단순히 돈을 벌 수 없는 레위인을 섬기는 차원이 아니라 이웃을 섬기는 것까지 확대된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돈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많이 내고 적게 내는 것이 아니라 내 신앙의 수준에 따라 그 범위와 금액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돈, 시간, 재능 등 모든 것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아야만 행위의 고백이 가능한 것입니다. 이 고백을 하게 되면 또 하나의 의문이 남게 됩니다. 세금 전의 월급으로 십일조를 드려야 하는지, 세금 후 실제적인 수령액을 기준으로 십일조를 드려야 하는지의 문제입니다.
과연 어떤 말이 맞고 어디까지가 맞는 걸까요? 다 맞습니다. 다만 내 신앙의 수준과 깊이에 따라 드림이 달라질 뿐입니다. 의미 없는 논쟁입니다.
요즘은 이런 말들이 오가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수 없는 상황이 되었는데 한국 전쟁 이후에 이런 전례는 없었다. 왜 노래방은 단속하지 않고 교회 모임만 훼파하려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목숨을 걸고 예배를 지켜내야 한다. 주일에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교회를 폐쇄한다는 것만큼 애통한 일은 없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가 이 땅에 창궐하게 된 이유, 하나님의 관점에서 한국교회를 바라본다면 해석은 조금 달라져야 하며 좀 더 깊은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예배당의 규모와 시설, 성가대의 찬양과 선포되는 설교, 주일 예배당에서 예배 형식에 갖춰 드리는 예배만이 예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드리고 삶을 드리며 나를 내어 드리는 것이 예배라는 것입니다.
진짜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고백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삶의 자리까지 연결되는 것입니다. 성령님과 늘 동행함으로 하나님의 마음으로 살아내는 일입니다. 내 생각을 버리고 주신 약속을 품고 살아가는 일입니다.
의미 없는 논쟁에서 벗어나 부르심에 힘입어 예배함으로 살아가는 오늘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한복음 4:2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