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딸아이가 아이클레이 만들기에 푹 빠져 있습니다. 생각보다 구체적으로 잘 만들어서 잘한다고 칭찬했더니 아빠가 원하는 것을 만들어보겠다고 합니다. 딱히 생각나는 게 없어서 토끼를 만들어달라고 했습니다. 질문이 쏟아집니다. “토끼 귀에는 핑크색이 들어가도 돼요? 토끼가 앉아 있는 것과 서 있는 것 중 어떤 것을 원해요?” 금세 만들어 왔습니다. 바쁜 와중에 계속 묻고 이야기해서 칭찬해주며 이번에는 거북이를 만들어달라고 했습니다. 어려울 것 같고 토끼보다는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아서였습니다.
이쑤시개로 거북이 등을 아주 세밀하게 표현하면서 재미있게 만들어냅니다. 또 무엇을 만들지 알려달라고 합니다. 너무 빨리 만들어 오지 못하게 이번에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라고 하는 무서운 호랑이를 주문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떡을 메고 있는 아줌마를 부탁할 생각이었습니다.
호랑이를 너무 귀엽게 만들어 와서 무서운 호랑이여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며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고 합니다. 지금 만든 거에서 무섭게 하면 귀엽지 않다고 합니다. 옥신각신하다가 닭과 병아리를 주문했습니다. 수탉, 암탉, 병아리 2마리.
너무 많다고 자기는 그냥 수탉 한 마리랑 병아리 한 마리만 만들겠다고 합니다. 왜 요청한대로 해주지 않느냐고 뭐라고 했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아빠, 내가 만드는 사람이니깐, 내가 만드는 거니깐 그냥 내 마음대로 할래요.”
딸아이의 말이 맞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만들면 그만입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으로 표현하면 그만입니다. 딸아이가 만드는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너무나도 귀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만드셨을 뿐 아니라 그 모습을 하나님 닮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 뿐 아니라 모두 특별하게 사랑하셔서 누구나 달란트, 재능, 소질을 한 가지씩은 품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마다의 종류와 그 크기는 하나님의 소관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그릇을 만드는 것은 토기장이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외모로 스스로와 상대방을 보아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생명이 주어졌기에 어쩔 수 없어 살아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그릇인지가 아니라 쓰임 받는지의 여부입니다.
잘 살고 못 사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왜 살아가야 하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왜 먹고 살아가야 하는지, 왜 행복해야 하는지, 왜 기뻐해야 하는 것인지, 왜 지금의 마음을 품고 있는지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사용되지 않는 그릇은 의미가 없습니다. 어떤 재질로 만들어진 그릇이고 그 그릇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만을 따질 것이 아니라 만드신 분이 어떤 이유로 날 만들었고 내가 그 이유에 맞게 사용되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가치 있게 살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만드신 분을 알고 그 마음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 상황, 상태를 한탄하는 것을 그치고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묻고 쓰임 받는 오늘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디모데후서 2: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