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에 앉아 함께 책을 읽고 있던 딸아이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엄마랑 아빠가 있어서 좋지? 고아가 아니라서, 세상에 너 혼자뿐이 아니라서 감사하지?” 딸아이가 말합니다. “당연하지!” 그래서 다시 말해줬습니다. “아빠도 너처럼 정말 감사하고 절말 기뻐. 하나님이 아빠와 늘 함께 해주시고 사랑해주셔서 나와 함께 해주셔서 그 무엇보다 기쁘고 감사해.”
감사의 고백을 듣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고백하고 싶었습니다. 놓쳐진 상황을 흘려보내지 않고 고백하고 싶었습니다. 마음속에서부터 깊은 기쁨이 솟아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을 때는 늘 외로웠습니다. 가정에서도 늘 혼자였고 학교에서도 내 가정형편과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친구가 없었습니다. 직장을 다닐 때는 더 했습니다. 그래서 혼자라는 것이 훨씬 편했습니다. 외로움은 늘 안주거리였습니다. 고독은 늘 세상과 나를 격리시켰고 전부가 되게 만들었습니다. 겉으로 적응 잘하고 사람도 많았지만 늘 혼자였습니다. 외로움은 생활이었고 내 존재 자체였습니다.
누가 내 얘기하는 것이 불편했고 내 상처와 비슷한 얘기만 나오면 서둘러 자리를 떠나기 바빴습니다. 특히 봄과 가을이 되면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홀로 앉아 눈물을 흘렸습니다. 슬픈 영화를 찾아 눈물을 흘려서 외로움의 눈물을 덜어내려고 애썼습니다. 외로움을 대하는 전부였습니다. 고독을 피할 수 없다면 누려야겠다고 살아온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알게 되면서부터 무언가 하나씩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알 수 없는 든든함이 생기고 늘 곱씹어야 했던 외로움 속에서 대화(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인생들을 만나주시고 마음을 다해 섬겨주시는 것도 성경을 통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믿어지지 않고 보여지지 않으니 늘 함께함을 물었습니다. 평소에는 그냥 위로 되는 정도였지만 정말 힘들 때면 더 답답하고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면 나와 보시라고, 진짜 계신다면 모습을 드러내시라며 절규하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과정과 이야기가 있지만 그저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로 너무나도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제 혼자 고독 속에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기도가 정직함 안에서 깊어지고 간절해졌습니다. 하나님은 무언가를 요구하고 기도를 들어달라는 존재가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심으로도 충분하고 감사하며 기쁜 존재가 되어져 있었습니다. 신뢰가 쌓이고 사랑에 눈 뜨게 된 후부터는 성경 말씀이 읽혀지기 시작하고 이해되었습니다. 삶의 이유와 목적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혼자가 아니에요. 기도해보세요. 그리고 함께 기도할게요.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늘 함께 해주십니다. 하나님께 나오셔야 합니다.” 세상 끝날 까지 포기하지 않고 우리를 사랑해주시는 하나님,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 늘 언제나 함께 해주시는 성령님은 세상 그 무엇보다 나를 존중하고 사랑하십니다.
동행하며 사랑받고 사랑하는, 존재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는 오늘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