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에게 묵상(큐티)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면 어렵다고들 합니다. 그런 묵상이라면 평생 거의 해본 적이 없다고들 말합니다.
성경 말씀을 읽고 ‘좋은 말씀이라는 것, 그리고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에서 멈춰진다면 묵상이 아닙니다.
말씀을 통해 과거의 나를 찾아보고 그 과거의 나의 모습과 하나님의 말씀을 견주어보고 말씀으로 삶의 기준을 세우는 것, 그리고 앞으로의 삶을 돌이키는 행함의 회개까지 연결되지 않는다면 묵상이 아닙니다.
어렵다고들 말하지만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 어제 나를 기분 나쁘게 했던 사람, 오늘 내 마음을 아프게 한 사람은 나도 모르게 자꾸 생각날 것입니다. 때마다 떠올려 생각하는 것이 바로 묵상입니다. 그 대상이 말씀이 되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안에 품어야 떠올릴 수 있고, 말씀을 읽고 깊이 마음에 새겨야 생각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묵상합니다. 그것도 상처와 아픔, 탐욕과 음란과 악한 정욕을 묵상합니다.
지나가는 비키니 입은 여인을 쳐다보는 것, 새로 나온 명품백을 바라보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마음에 품고 찾아보고 갈망하고 묵상하게 된다면 죄가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이미 간음했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닭이 달걀을 품으면 병아리가 태어납니다. 음욕, 탐욕을 품으면 반드시 그에 합당한 열매가 맺혀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품어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날마다 마르지 않도록 부어주시는 사랑과 생명입니다.
내 마음에 무엇을 품고 있는지, 내가 보고 듣는 것 중 무엇을 선택하고 품고 되는지를 점검해야만 합니다. 점검으로만 되지 않고 쉽지 않습니다. 가장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마음과 생각에 성령님이 충만하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다른 어떤 것도 품을 수 없는 자리가 없게 됩니다. 본질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채워지지 않는다면 음란, 쾌락, 탐심, 욕심의 생각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됩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져야 합니다. 그 사랑이 나를 부요케 하고 감격케 함을 경험해야 합니다. 끝까지,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십자가를 묵상해야 합니다.
진리이며 사랑 그 자체인 하나님의 말씀을 품고 살아가는 오늘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골로새서 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