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소망을 가져오듯 두려움은 또 다른 두려움을 가져옵니다. 그 두려움은 두려움에 머물지 않고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묶어버립니다. 객관적인 생각은 상실되고 내 주관만 뚜렷해지게 됩니다.
그 두려움을 이겨보려고 애쓰고 힘껏 살아보지만 그리 멀리가지 못합니다. 묶여있기 때문입니다. 환경을 바꾸고 여러 가지의 생각을 정리해보아도 별반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늘 그 자리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다보면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만 의식하게 됩니다. 두려움으로 자존감은 깎여 나가고 열등감은 금세 자라납니다.
과거를 벗어나지 못하고 현실조차도 과거에 종속되어 버립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지만 늘 제자리인 이유입니다.
두려움이 생겨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그 중 가장 두려움을 강력하게 만드는 것이 있습니다. ‘상처’입니다. 일반적인 상처가 아닌 남들이 알지 못하는 나만의 상처가 두려움의 깊이 더하게 만듭니다.
그 상처를 열어 보이지 않고 끌어안으면 안을수록 두려움은 강력해지고 상처는 깊어집니다. 숨기는 것처럼 보이고 괜찮은 것처럼 보이지만 얼굴과 몸과 같은 신체에도 어느덧 드러나게 됩니다.
두려움은 우리를 늘 실패로 이끕니다. 시작도 하지 못한 체 실패해버린 인생으로 보여져 스스로를 타박하는 강박의 마음과 스스로를 너무 안쓰럽게 여기는 자기 연민의 마음으로 성장합니다.
다른 곳에 마음을 두고 열심을 다해 살아가도 그 상처는 아물지 않습니다.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고 잠재하여 더 자라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합당한 이유 찾는 것을 그치고 맞닥뜨려야 합니다.
그 힘든 마음도 하나님을 향해 쏟아놓고 공동체에 열어 놓아야 합니다. 더 상처가 깊어지는 것처럼 보여 지지만 우리 몸의 세포와 엉겨 붙어 있는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아픈 상처에 소독약을 뿌리면 아픕니다. 상처가 깊으면 깊을수록 아픔의 정도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에 감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 두려워하는 것이 있습니까? 하나님 외에 눈치를 보는 것이 있습니까? 지금 있는 것을 잃을까봐 두려우십니까? 원하는 곳까지 가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십니까? 오늘 살 것을 염려하십니까?
하나님 곁에 있으면 죄와 멀어질 수밖에 없듯 하나님을 신뢰하고 주신 약속을 붙들고 용기 있게 상처를 열고 나아가면 두려움은 깨끗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빛이 있는 곳에 어둠이 존재할 수 없듯, 열이 있는 곳에 추위가 있을 수 없듯 하나님 곁에 있는 자에게 두려움은 눈 녹듯 사라지는 것일 뿐입니다.
두려움과 상처는 내가 품을 것이 아닌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것임을 기억하고 기도하는 오늘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허무한 것 같이 되리니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이사야 41: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