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 Church

큐티/공지

어젯밤, 소천을 준비하고 계시는 사모님을 뵙고 왔습니다. 암으로 고통 받으면서도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더 뜨거워지셨고 천국을 향한 확신이 가득 차 계셨습니다. 얼마 전 암으로 천국에 입성한 젊은 자매에 이어 두 번째 겪는 공동체의 아픔이자 작별의 준비였습니다. 이 분들을 사랑으로 품고 가르치는 선교사님이 걱정되었습니다.

 

천국에 대한 확신을 갖고 더 주님을 사랑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이끌겠지만 낙심하는 마음이 들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만나고 나서 두 가지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지체를 떠나보내는 일로 인해 얼마나 상심이 클까’라는 마음 하나와 ‘이토록 천국에 확신을 갖고 가는 성도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하는 것이었습니다. 위로와 부러움을 함께 느끼는 묘한 감정이었습니다.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관계없이 죽음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빈부노소 관계없이 이 땅에 숨 쉬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언젠가는 찾아올 일입니다. 반드시 만나는 일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준비하며 살아가지는 않습니다. 얼마 전까지 만해도 웰다잉(well-dying)이라는 말이 나왔지만 다시 시들해졌습니다.

삶을 정리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한 논점이 되었어야 하는데 회생가능성이 없는 환자에 대한 연명치료 결정권이 누구에게 있고 윤리적인가에 대한 논의로 흘러버렸기 때문입니다.

 

본질이 아닌 방법으로 흘러가버려서 웰다잉의 중요성을 알리고 어떻게 죽음을 준비해야할 지를 나누고 가르칠 수 있는 시간을 놓친 것 같아 아쉽습니다.

먹고 살 것은 준비하면서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습니다. 태어난 순서는 있어도 죽음을 맞이하는 순서는 어떤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임에도 준비하지 않습니다.

죽음을 애써 외면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면 힘들고 아프고 두렵기 때문입니다. 죽음에 대한 대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을 늘 준비합니다. 사모하기까지 합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내 것을 남에게 기꺼이 나눌 수 있습니다. 세상의 기준을 따라 살지 않고 세상이 좋다고 하는 것을 사모하지도 않습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과정에는 끝이 있기에 우리 삶의 끝에도 심판이 있습니다. 그 심판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와서 십자가에 달려 우리를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이를 믿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삶은 어쩌면 죽음을 향해 매일 한 걸음씩 걷는 과정과도 같습니다. 이 길이 반복되는 아픔과 두려움이 아닌 하나님을 향한 기쁨이며 소망이 되는 오늘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2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