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를 위한 기도를 할 때마다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미안한 마음과 어찌할 수 없는 사랑의 마음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배우고 경험한 것이 전부가 될 수 없기에, 그 또한 옳은 것이라고 할 수 없기에 늘 고민되는 것이 자녀입니다. 사랑을 줘도 왜곡되지 않고 세상적이지 않게 줄 수 있도록 힘씁니다.
그럼에도 늘 부족하고 늘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그래서 늘 기도합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내가 아빠를 처음 해봐서 어렵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가르쳐주세요.”
성도들에게는 자신 있게 가르쳤습니다. “부모가 살아온 모습을 그대로 자녀들이 살아가기에 그저 그냥 교회에 다녀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을 누리며 살아가야만 자녀 십자가를 향하게 됩니다.”
저 또한 그렇게 자녀를 키우고 삶이 설교가 되기 위해서 힘쓰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아주 명확하게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자녀는 내 삶의 모습을 보지만 나를 따라 살아오기에 내 뒷모습을 보며 자라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내가 살고 이야기하고 있는 그 모습만이 아닌 내 뒷모습을 보는 자녀.
내 뒷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자녀가 볼 때 내 뒷모습은 과연 어떨까? 회개가 절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자녀에게 잔소리를 하고 돌아설 때 자녀의 눈에 비춰진 내 뒷모습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머릿속에 그려졌습니다.
과연 사랑하는 아빠의 모습으로 보여 지는 걸까? 내 아내, 부모, 성도들에게 비춰진 내 뒷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내 뒤에 남겨진 그들이 내 뒷모습을 볼 때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마음을 품을까?
세례 요한이 많은 이들에게 선지자로서, 구원자로서 칭송 받을 때 그는 예수님이 오실 길을 준비하는 사람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자신의 제자 뿐 아니라 모두가 예수님을 따르도록 그가 구원자임을 말했습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분명히 알았고 자신은 그 길을 예비하는 자라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습니다. 열등감, 자존감, 섭섭함의 어떤 감정도 그의 선택을 방해할 수 없었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이 전부되는 신앙, 소명과 사명으로 살아가는 인생,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따르는 것이 세례 요한의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그가 걷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두려움 없이 함께 따라 걸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포장하고 아닌 척하며 또 괜찮은 척하며 잘난 척하는 인생을 언제까지 살아가려고 합니까? 아무리 앞에서 가려봐도 뒷모습은 가릴 수 없습니다. 그 뒷모습을 자녀가 따라 걷는 치명적인 일은 어떻게 감당하려 합니까?
세례 요한의 고백이 오늘의 내 뒷모습을 만들어가는 모퉁이 돌이 되어 집니다. 회개하며 돌이킴으로 진실하고 온전함의 뒷모습이 되는 인생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요한복음 3:2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