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 Church

큐티/공지

하나님의 말씀, 진리를 선포하는 일은 하면 할수록 어려운 일입니다. 말씀의 깊이를 알면 알수록 어려워지는 것도 있지만 성도의 삶을 알기에 진리 그대로 선포하는 일이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세상 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내는 것도 녹록치 않을 텐데 더 밀어붙이는 것처럼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미안한 마음,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 때문입니다. 위로하고 격려해도 쉽지 않은 현실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해도 많이 받습니다. 굳이 그런 어려운 상황 가운데 있는데 위로도 하지 않고 그렇게 따박따박 옳은 소리를 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가뜩이나 힘든 데 굳이 지금 그렇게 밀어 붙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강해설교’입니다. 사회복지사로 오래 활동하다보니 말씀을 오랫동안 깊이 읽지 못했기에 공부도 해야 했고 오해받지 않도록 고정된 본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겠다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구속사적 관점으로 성도들의 삶과 하나님의 말씀을 연결하기 위해 은혜를 구하며 목회를 합니다. 

 

그럼에도 너무 어렵게 설교본문이 정해지는 때가 있습니다. 위로가 필요한 때인데 말씀을 직시하게 해야 하고 격려가 필요한 때인데 회개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민감한 문제에 있을 때 그 민감함을 오픈해야 하는 본문이 정해집니다. 한 두 번이 아닌 것이 큰 어려움입니다. 설교 본문을 놓고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마음이 다치지 않을까, 숨 막히지는 않을까, 낙심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의 마음으로 고민하는 시간이 큽니다. 어떤 때는 단어를 좀 더 온화하게 선택하고 목소리를 낮추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성도와 시선을 맞추지 않고 기도하며 선포합니다. 어떤 때는 속으로 울면서 말씀을 선포할 때도 있습니다. 또 어떤 때는 성도의 마음을 느끼며 어려운 마음을 품게 되기까지 합니다. 

 

어떤 드라마 내용 중 수술 장면을 보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의사는 아픈 부분에 칼을 댑니다. 그 상처 있는 곳을 열어 기어코 그 현실을 맞닥뜨립니다. 환자와 가족의 마음을 무겁게 하며 환자의 몸에 상처까지 냅니다. 그럼에도 욕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가 잘 부탁한다고 합니다. 생명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의사는 환자를 살리고자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몸에 상처를 내고 힘든 수술을 할지라도 살아야 하는 것이 우선이기에 그렇습니다. 영혼의 생명도 그렇습니다. 더 중요한 일입니다. 영원한 생명과 죽음의 기로에서 환자와 같은 성도들을 붙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분이 상하고 상황에 도움 되지 않은 말이라도 해서 그 문제를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의사처럼 좋은 소리는 듣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어떤 말씀이라도 감사함으로 취할 수 있는 겸손의 마음과 신뢰하는 마음이 부어지는 오늘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요한계시록 22:1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