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을 이야기하면서 결정적인 순간이 될 때마다 머릿속에서는 늘 ‘깜냥’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됩니다. 나도 모르게 현실의 나를 바라볼 뿐 믿음의 시선을 놓치는 것입니다.
전에 나눴던 바이블톡에서도 본인의 깜냥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지만 내 안에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명확하게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의 자리에서 충성을 다하는 게 옳다고 여기며 믿음으로 바라보지 못했던 뿌리인 ‘깜냥’을 선명하게 보았습니다. 내 깜냥을 내가 스스로 판단하는 것을 멈추고 하나님이 일하심에 주권을 내어 드리는 일이 우선 되어야 함을 알면서도 스스로의 깜냥을 생각하며 머뭇거리고 주저합니다. 내게 주신 좋은 기회가 있어도 늘 양보만 합니다. 섬김이 아닌 회피라는 것을 알면서, 순종하며 걸을 때 믿음을 경험하게 됨을 알면서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늘 준비되어 계신 것, 그 때를 준비하고 기다리시며 우리의 기도가 채워지고 온전히 의지하는 삶 되기를 오늘도 기다리고 계시다는 것을 수없이 놓쳤습니다. 예수님은 아직 내 때가 이르지 않았지만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다고 말씀하심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주신 말씀이 ‘여호와 이레’입니다. 내 속에서 나를 붙들고 있는 ‘깜냥’이라는 단어를 대체할 단어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이끌겠다, 너는 그저 따라오면 내가 그 때에 맞춰 해야 할 것을 이야기하고 준비하겠다.’ 맞습니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이삭을 바치라는 말을 듣고 새벽부터 움직였습니다. 도대체 왜 그러시는지,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 혹시 하나님이 내 믿음을 시험하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하나님이 행하기 원하시는 대로 움직였습니다. 지금껏 살아온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자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스스로의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고 오직 믿음만을 붙들었습니다.
하루아침에 믿음의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은 결단코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살아온 여정이 쓰러지고 넘어지며 머뭇거리는 인생이었기에,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생각이 앞서는 삶을 살았기에, 믿음으로 사는 것이 그 어떤 길보다 완전하다는 것을 깨달은 삶의 여정이 차곡차곡 쌓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오늘, 지금의 선택은 믿음이 되어야만 합니다. 삶의 여정 가운데 내 생각을 믿음으로 여기며 살아왔던 것, 속고 살아온 ‘깜냥’과 같은 것을 찾아내 쳐내고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기도하며 돌파하는 오늘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창세기 22:1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