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교에 가서 신앙이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퇴보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신학교에 다닐 때 교수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교회를 이끌고 성도를 가르치는 사람들의 신앙이 이대로는 안 된다, 그저 양육하는 수준이 아니라 예수를 따르는 참된 제자를 배출하지 않고서는 안 된다, 이들을 깨우지 않고서 교회가 깨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필드에 나와 목회를 해보니 틀린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교파를 초월해 많은 목회자들을 만나보았습니다. 물론 훌륭하고 존경스러운 목회자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제대로 모르고 제멋대로 해석하는 많은 분들도 만났습니다. 어떤 목회자는 자신이 경영자인줄로 착각합니다. 어떤 목회자는 자신을 능력자로, 또 어떤 목회자는 자신을 교주와 같이 생각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영역도 분명 있지만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러다보니 성도들이 목회자를 삐딱하게 보기 시작합니다. 믿을 수 없는 존재로 여기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성경적 목회자가 아닌 자신의 가치관에 맞는 목회자를 찾습니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모습이 아닌 배경과 환경 속에서 자신에게 맞는 목회자를 찾습니다. 자신의 기준에 목회자를 두니 판단하고 정죄하며 스스로 시험 당하며 교회를 옮겨 다니기만 반복합니다. 목회자를 영적 리더로 여기지 않으니 배울 것이 없습니다. 자신이 다 아는 것이라고 머리로만 믿으니 따를 것도 없습니다. 그저 목회자의 부족한 부분만 눈에 들어옵니다. 사랑과 섬김이 어디로 갔는지도 모른 체 정죄만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더 아는 자가 영적 리더입니다. 그 사랑의 경험을 깊고 짙게 한 사람이 영적 리더입니다. 더 많이 내려놓고 더 낮은 마음으로 예수를 따르는 사람, 생명을 내어 맡기고 살아가는 자, 거룩함으로 분별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자, 자신의 생명이 아닌 성도를 살리고자 하는 자가 영적 리더입니다.
세상에 희한한 목회자가 많은 것도 사실이고 자신이 성직자임을 잊고 살아가는 목회자, 자신의 유익을 구하기 위해 목회를 수단, 직업으로만 여기는 사람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인정하는 영적 리더로 살아가는 목회자, 눈물로 섬기며 살아가는 목회자, 생명을 내어주는 목회자, 오직 예수님만 따르는 목회자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인도함을 받으며 인도하는 목회자를 따라야 합니다. 자신의 것을 이야기하며 공감하는 자가 아닌 성경을 이야기하는 목회자를 만나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이 아닌 성경에서 말하는 목회자를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목회자를 근심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 함께 즐거워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영적 유익을 얻는다는 것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습니다. 목회자를 긍휼히 여기고 기도하고 사랑하며 섬기는, 그래서 주시는 유익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살아가는 오늘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13:17)